설악산종주 산행기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
산 행 일 : 2002. 10월 12일 토요일 (맑음)
산행인원 ; 혼자
산행코스 : 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공룡능선-회운각-소청봉-대청봉-
끝청-서북능선삼거리-한계령 (18시간15분 알바2시간 휴식 및 식사시간포함)
<개요>
지리산 천황봉 에서부터 백두산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백두대간은
점봉산을 넘어 설악으로 접어들며 남한구간의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한다
오늘 산행할 설악산은 워낙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전번 대간종주 때와는 역방향으로 미시령에서 한계령으로 넘어가는 산행이다
한반도 골격의 근간인 백두대간 전 구간 중 가장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답고 또 웅장한 설악의 대간 능선은
그 아름답고 웅장한 위용만큼이나 육신의 고달픔 역시 만만치 않은 산행이다
< 산 행 기 >
<01:00 미시령>
2002년 10월 11일 금요일 밤 9시
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설악 종주를 위해 집을 나섰다
그 동안 몇 차례 계획을 세울 때마다 설악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속을 썩이든가
갑작스럽게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돌출 이벤트로 인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곤 하여
이번만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01시 미시령에 도착했다.
별을 볼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해서인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의 영롱한 빛을 발하며 나를 반겨 주는 것만 같다
몸을 앞으로 수그려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고 있지만
뭐 그 정도야 궂은 날에 비하면 매우 감지덕지가 아닌가……
설악의 미시령에서 마등령까지는 자연 휴식년제 구간으로 출입금지 지역이다.
미시령휴게소 맞은편에 있는 등산로 초입은 비무장지대도 아닌데 철책으로 둘러 쳐놓았고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다.
오늘 걸어야할 이곳에서부터 한계령 까지는 설악의 백두대간 능선인데
이 능선을 따라 동해안쪽을 외설악, 내륙 쪽을 내설악으로 분리한다
대청봉, 울산바위, 천불동계곡, 오색, 그리고 화채능선은 외설악이고
오세암, 백담사가 있는 백담계곡, 귀때기청봉, 그리고 가야동계곡은 내설악이다.
<01:10 출발>
미시령 휴게소 맞은편 절개지 위로 올라 철책을 우회하여
짙은 어둠으로 둘러싸이고 세찬 바람소리로 으르렁거리는 황철봉을 향하여
짙은 어둠을 혜치며 홀로 설악을 오르기 시작한다
헤드랜턴 전구를 할로겐으로 바꾸어 불빛이 아주 밝다
앞으로 진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01:55 너덜지대>
작은 나무와 잡초만 있는 초입의 등산로에서 세차게 불던 바람은
미시령 휴게소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작은 언덕을 넘어
캄캄한 숲속으로 들어서니 어느새 잦아들어, 어둠속에 묻혀 버린 고요와 적막만이 나를 감싸고
한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는 나의 발걸음은 설악에 깊은 잠자는 설악의 고요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간다.
이제부터는 이 어둠속에서 나 혼자라는 조금의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어둠을 헤치며 고목들이 무성한 곳까지 왔을 때, 단잠 자던 산새 한 마리가 갑자기 퍼득이며 나르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다.
밝은 랜턴을 치켜 올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탄한 능선을 우측으로 휘어 나간다.
캄캄한 밤이지만 불빛에 비치는 설악의 나뭇잎은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이 아니고 말라버린 낙엽에 불과한 그런 모습이어서
올해도 그 아름다운 설악 단풍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
넓고 비교적 얕은 안부를 지나 더 좁아지고 가팔라지는 등산로를 따라
넘어진 나무들과 어둠 속에서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바위들을
이리저리 피해 올라가면 두 무릎 관절을 괴롭히는 너덜지대가
어둠 속에서도 드넓게 훤히 올려다 보인다
<02:35>삼각점(설악22)
속초에서 옛 국도를 따라 미시령으로 올라올 때, 좌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거대한 울산 바위를 지나
산등성이에 고만고만한 바위들을 가득 부어 놓아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너덜지대다
크기나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바위들이 서로 맞물려 있어
사람이 빠져 추락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그 틈새에 끼이면
중상을 입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이곳에 내가 도착하길 기다렸다는 듯
좀 전 미시령을 출발할 때 불었던 세찬 바람이 이곳에서도 세차게 불고 있다
세찬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잡으랴 바위와 바위 사이에 빠지지 않게 신경쓰랴
전에 이곳을 통과할 때 보다도 몇 배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첫 번째 너덜지대를 통과하는 대만 40분이 걸려 다 오르고 나니
설악22 삼각점이 있다.
<03:20 자연보전지역 표시석>
방향을 우측으로 꺾어 능선을 걷기 시작하는데 계속 너덜지대다.
너덜지대는 곧 끝이 나지만 여전히 등로 사정은 좋지 않다.
지난 두 번의 경험에 의하면 스틱을 사용하기에 좋은 길이 아니어서
저항령을 지나고 다시 너덜지대를 통과후 능선 에서부터 스틱을 사용할 요량으로
아직까지 배낭에 매달아 놓고서 어떤 곳이 황철봉인지조차 신경도 안 쓰고 걷는 사이
저항령으로 내려가는 황철봉 능선의 맨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다
모두가 바위들로 되어있고 그 가운데에 자연보전지역 이라 쓰인
네모난 돌표시석을 돌로 감싸 세워 놓았다.
<05:35> 저항령
자연보존지역 표시석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번에는 내려가는 너덜지대다
이곳에서 난 앞으로의 산행에서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어둠속 산길 찾기라는 혹독한 곤혹을 치룬다
어디나 그렇지만 일단 입구가 넓게 돌로 되어있는 들머리는 길 찾기가 수월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돌을 밟고 지나갔어도 그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얕은 계곡물을 건널 때처럼 그 거리가 짧으면 눈짐작이라도 하겠지만....
너덜지대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나 살펴보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주위 나무에 매달려 있는 표식 리본을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십여 미터 앞의 제법 큰 돌 위에 작은 돌 몇 개를 올려놓은 것이 보인다.
내려가 보니 사람이 버린 오물들이 있어 이 표시대로 따라가면 되겠지 생각하며
내려 가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넓고도 넓은 너덜바위 지대를 어둠속 에서 이리저리 건너뛰며 오르내리길 두어 차례....
대낮에도 건너뛰려면 조심해야 할 판인데
마음은 급하고 길은 보이지 않으니 힘이 더 빠지는 것 같다
다시 올라와 그 돌이 쌓인 곳에서부터 좌측과 우측으로
저 아래까지 두 번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 그 네모난 돌 표시가 있는 곳까지 가서 백여m 이상 다시 내려가 보기도 했지만...
나침반을 꺼내 지도와 맞추어 보니 방향은 맞는 것 같다
너덜지대 에서 길을 찾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해 그렇게 바람이 세찬데도 땀이 난다.
한심한 생각에 누가 혹 지나가는 사람이 없나 기대도 해보았지만 이 오밤중에 어느 미친.....
밤이지만 까마득한 멀리 대청봉 방향에서 불빛이 오락가락 움직이는데 왜 그렇게도 반가운지....
지금 나한테는 아무 쓸모도 없는 불빛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날이 밝으면 출발하기로 하고 그동안 잠이나 잘까 생각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너덜지대 바위 아래에 아주 기막힌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세상에 등로를 못 찾고 이곳에서 노숙을 하다니...
한심스런 상황을 합리화할 이유를 애써 찾아보며 마음을 다독여본다.
“그래. 항상 산길 찾는 독도법은 오를 때는 쉬워도 내려갈 때는 어렵다는 말도 있고,
또 보름달도 없는 캄캄한 밤중이잖아....”
그러나 내 집에서도 방이 바뀌는 것은 고사하고
같은 방에서도 그 잠자는 위치만 바뀌어도 제대로 잠을 못자는 사람이
윙윙 바람세찬 이런 너덜지대 바위틈에서 잠이 올 리가 만무하다.
별을 보고 누운 내가 잘못이지...
곰곰이 지난 대간 종주 때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세월이 여러해 흘러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딱한 나의 처지에선 그 때를 기억해 내는 일밖에 별 위안거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그때는 오늘 내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찾아본 것처럼
큰 바위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편안한 길을
초등학교 6학년 수일이도 수월히 통과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럼 저 너덜바위 중간에 표시해 놓은 것들은 무어란 말이냐?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몇 개씩이나...
아까 처음 너덜지대를 올라올 때도 그 모양의 표시도 여럿을 보지 않았는가?
맟다! 바로 그거다...
저 표시는 따라가라는 표시가 아니고 그 이상 내려가지 말라는 표시다.
처음 너덜지대의 표시는 그 이상 저쪽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표시고...
왜 나는 그 표시를 따라가라는 의미로만 해석했을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표시 위쪽으로만 찾기 시작했는데
불과 일분도 안 되어 더욱 밝아진 랜턴 불빛 속으로
나뭇가지에 걸려 흔들리고 있는 하얀색 리본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에 가야할 선명한 길이 있다.
분명히 아까도 몇 번 그곳을 살펴보았는데...
그때가 05시 10분. 어찌되었건 길을 찾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잠깐을 내려오니 저항령이다.
그 세차게 불던 바람도 거의 없다.
황철봉 마지막 봉우리에서 25분 거리
내려온 시간을 생각하니 너무도 황당하다
25분 거리를 못 내려오고 거의 2시간을 헤맸으니....
<06:00 두 번째 너덜지대 정상>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이제 캄캄한 밤은 지나고 밝은 아침은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저항령에서 나무가 많은 길을 조금 지나니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너덜지대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힘만 좀 들다 뿐이지 날도 점점 밝아오고 또 오르는 길이니 신경 쓸 것이 없다.
정상까지 처음 너덜을 올라올 때 보다 훨씬 수월하다.
널려있는 바위들도 좀 작고 너덜지대 규모도 훨씬 작아 황철봉 너덜지대보다 힘이 덜 들어
여유 있게 너덜정상에 올라선다.
<07:45 1376봉>
너덜정상에 올라오니 또 다시 바람이 세차게 분다.
완전히 날이 밝아 잠자던 설악의 모습은 보이지만 전망은 그리 좋지 않다.
이곳 설악의 날씨는 너무도 청명하여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데
동해바다 멀리에는 또 무슨 일이 있어 심술이 났는지
얕은 구름과 바다안개가 잔뜩 낀 것 같아
오늘 선명한 설악의 일출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 이곳부터는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계속된 능선이기에 스틱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지금부터는 남쪽을 향해 걷게 되는데
너덜 정상에서 뚜렷한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낭패다.
정상 바로 앞의 오목조목한 바위 앞에 길은 안보이지만
그 오목조목한 바위 너머에 길이 나 있다.
우측 밑으로 급하게 떨어지는 몇 미터 아래에 리본도 여러 개 달려 있다.
아무튼 어느 곳이고 길이 좋아도 리본이 없으면 일단 가지 말아야 한다.
좀더 세심히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룡능선을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강원도 백두대간구간 중에서도
동고서저(東高西低)현상이 뚜렷한 곳이어서 등산로는 거의가 서쪽인 내륙 쪽으로 나있고
동쪽 동해안쪽은 거의가 그 끝을 가늠할수 없는 절벽 낭떠러지다.
어느 봉우리에서나 바로 능선에 마루 금이 아니면 일출은 보기 힘들다.
앞으로 삼십분 이상 기다려야 일출을 볼 수 있기도 하고
해가 뜨는 저쪽 바다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 것 같아 그냥 길을 재촉하였다.
뜻하지 않게 너무도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비해버려 늦게 한계령에 도착할 것을 각오하고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체력 안배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하였다.
너덜지대야 그렇다 치고 너덜정상 에서부터 1376봉 까지는 출입금지 지역이기도 하지만
돌도 많고 비탈도 많아 자주 미끄러지기도 하고
오르내림도 만만치 않아 오늘 산행 중에 제일 걷기 싫은 구간이다
해는 떠올라 모든 산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설악의 단풍이 이곳에선 보이질 않는다.
가끔가끔 길옆에 바짝 말라버린 갈색의 나뭇잎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토록 거세게 불어오던 설악의 모진 바람이 서서히 수그러든 것이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인데도
너덜정상에서 1시간 반 이상 걷기 불편한 길만을 걸어서 그런지
이곳 등산로는 몹시 지루하기만 하다
마치 자갈을 부어 놓은 것처럼 잔돌 가득한 등산로를 미끄러지기도 하며 올라오면
오늘 설악의 일출을 보려 했었던 마등령 바로 북쪽 위에 있는 1376봉이다
그냥 약간의 공터만 있는 정상에 표시석도 없고 이정표도 없다
혹 마등령으로 올라올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이곳을 둘러보길 권하고 싶다.
산행을 하다보면 알면 저절로 발길이 향하게 되는 절경인 곳이 몰라서 못가보는 곳이 너무도 많다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의 반대 방향으로 조금 가면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곳에서 계속 저항령 쪽으로 그야말로 비단같이 고운 등로를 한 십오분 정도 올라가면 1376봉이다.
아무리 설악이라 해도 같은 산을 오르는데 이렇게 길이 다를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이곳에서는 설악산의 모든 산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다
그 경관이 하도 절경이여서 적어도 나는 이곳이 설악을 이해하는데 대청봉 못지않게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북쪽에 한밤에 걸어온 황철봉 능선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고
길을 잃어 밤새 나의 진을 빼버린 그 너덜지대가 마지막 봉우리 끝자락에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고개를 약간 북동쪽으로 돌리면 발아래 덩치 큰 울산바위가 점잖게 앉아 있고
그 옆으로 세존봉이 솟아있고
아름다운 천불동계곡 건너에 오르지 못하는 화채봉이
수많은 자연의 기묘함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남쪽으로 오늘 힘들여 걸어야할 공룡능선 끝에는
대청, 소청, 중청이 빨리 오라 손짓하고 있고
대청에서 다시 걸어야할 바라만 보아도 웅장한 서북능선에 끝청이 보이는가하면
그 아래 악어 이빨같이 날카롭게 보이는 암봉이 즐비한 용아장성 능선이
백담계곡을 따라 길게 뻗어있다.
다시 서북능선으로 올라서면 귀때기청봉 바로 옆으로 멀리 가리봉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안산과 함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설악의 그 모든 것을 가깝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서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1376봉이다.
우리네 사람들도 그렇다
좀 떨어진 곳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음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바라본다면
그 아름다움은 더 오래오래 기억되고 또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오래오래 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08:05> 마등령
1376봉에서 마등령으로 가는 길은 작은 돌 하나 없는 그야말로 비단길이다
경사도 내려가기 좋을 정도의 각도여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 흥얼거리며 내려오면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있는 비선대 삼거리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미시령에서 이곳까지가 출입금지 지역이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 사람을 만났다
삼십 여명 정도 되는데 반갑기도 하지만 좀 소란스러운 느낌을 받는 그런 팀인 것 같다
1376봉을 내려오며 잠깐 쉬어가려던 마음은 왁자지껄 소란스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잠깐 접어두고
황급히 비선대 삼거리를 지난다
비선대 삼거리에서 5분 가면 우측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갈 수 있는 마등령이다
안내산행 가이드 한 명이 땅에 산행 안내 표시를 하고 있다
공룡능선입구를 들어서면서 오늘 등산객을 참 많이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누려온 고요 속에 나 홀로의 행복한 산행은 이곳에서 끝이 아닐까 생각한다
<08:20 나한봉>
마등령은 비선대나 오세암에서 올라오면 공룡능선의 시발점이다
벌써부터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어 쉼 없이 마등령을 통과하고
약간의 작은 너덜을 지나 까마득히 멀리까지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나한봉을 지난다
현재 위치 푯말에 03-01이라 표시되어 있다.
우측 발아래 멀리 수렴동계곡 쪽으로 뻗어 있는 용아장성능선 모습이 보인다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용의 이발처럼 뻗어있는 용아능의 모습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름답게만 보인다.
나한봉을 지나 급하게 내리막을 내려선다.
<08:45> 이른 시간인 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스쳐지나 가지만
오늘 하루 종일 나는 홀로 걸어야 한다
양지바른 등산로 한편에 비켜서 혼자서 아침식사를 했다.
<09:10> 현재위치번호 03-03에서 바라본 공룡능선의 압권 1275봉이 아름답게 보이고
대청봉도 그리 멀지않게 보여 공룡능선을 벌써 반쯤 온 것 같은 기분이다
1275봉을 오르는 오르막길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급경사 오르막 암능의 모습은 마치 쉽게 오르라고 내려놓은 줄사다리처럼 보이고
많은 사람들은 그 줄사다리를 힘겹게 오르는 것 같아 보여 은근히 걱정도 된다
내려오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보이고 널찍한 1257봉 고개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09:35 1275봉> 1275봉 바로 직전 안부에서 동해 쪽으로의 조망은 참으로 아름답다
머리를 90도 가까이 뒤로 들어야 그 끝을 볼 수 있어
마치 거대한 바위로 하늘까지 천벽(天壁)을 쌓아놓은 것 같아 보이고
그 시작점이 어딘지 보이지는 않지만 천 길도 넘을 듯한 절벽 아래 건너 계곡에
오늘 처음으로 내려다 보이는 곱게 물든 붉은 단풍 모습이 정말로 장관이다
그 곳에서 조금을 가다 급경사 암릉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면 1257봉이다
공룡능선으로만 따진다면 절반을 온 셈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데
여기까지의 피곤함도 모두 잊은 듯 모두가 한결같이 환한 표정의 얼굴 모습이다
공룡능선 산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게 마련이다.
어느 방향에서 오르더라도 급경사 긴 오르막 끝 1275봉에 간신히 오르면
가슴 속 깊이까지 밀려 들어오는 설악의 장엄함이 고된 산행에 지친 나를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맞이한다
하도 경치가 절경이어서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평안하고 환한 모습들이다
나 홀로 밤새 이곳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일행은 없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돌봐줄 것 이라 생각하며
배낭을 벗어 한쪽에 세워놓고 집에서 가끔 생각나던 1275봉 정상 암봉에 올랐다
1275봉 쉼터 앞에 압봉으로 되어 있는 오르기가 좀 위험한 곳이다
그래도 누구나 조금만 조심하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대개는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게 되지만 아~ 이런 곳이 있구나.. 알고 나면
누구나 다시 찾아와 오를 것이다
혹 공룡능선을 가볼 기회가 있으면 꼭 이곳을 올라와 보길 권하고 싶다
공룡능선 산행을 하고 이곳을 그냥 지나치면 설악을 그냥 왔다 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1275봉 암봉 위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의 그 모습....!!!
짧은 나의 글 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서너발치 물러서 있어야 안심이 되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수천길 낭떠러지 절벽 아래로
권금성에서 시작한 화채능선에 감싸여 있는 거대한 압봉으로 된 천하 대지리와
그 옆 범봉의 위세에, 한낱 작은 인간에 불과한 나는 그저 넋을 잃고 자연의 장엄한 위세에 주눅들며
점점 저 설악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숙연한 마음을 갖게 하는 대자연 보다도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이 크고 아름다운들 사람의 넓고 고운 마음만이야 하겠는가
옛 부터 바다같이 큰 마음과 비단결보다도 더 고운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은 마음이 크고 아름다운 이를 만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같이 진실해지는 것이다.
<11:40 신선봉>
10시25분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1275봉을 출발했다
1275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
사면으로 바윗길을 돌아가며 지나온 1275봉을 바라보면 그리도 아름다울 수가 없다
공룡능선에서 우측 가야동 계곡 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모습에 점점 더뎌지는 발걸음만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토요일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진행하는 속도가 점점 더뎌진다.
11: 20 잦은바위골로 내려가는 곳을 지나고
또다시 거친 숨을 내쉬며 급한 오르막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
하늘을 찌를 듯 첨예한 범봉과 잦은 바윗골에 가득한 아름다운 설악의 기암들을 바라보며
지그재그 비탈 급경사를 오르면 암봉인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신선봉에 오른다.
<12:20 무너미 고개>
신성봉 바위에 걸터앉아 갈등 끝에 백두대간 능선을 택하기로 하였다
신선봉에서 조금 내려오다 좌측 경사진 암봉 사면으로 발을 디딜만한 곳이 비스듬히 있는 곳이 있다
등산로를 따르지 않고 그 디딜만한 곳을 따르면 대간 능선이다
위험한 암릉은 아니지만 대간 마루금답게 경치가 좋다
다행이 무너미 고개까진 거의 내리막이라 경관도 좋고
발걸음도 무겁지 않고 인적도 없어 혼자서 걷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신선봉에서 무너미고개까지 대간 마루금도 역시 출입금지 구역이다
출입금지 표시에서 다시 넓은 등산로와 만나면 곧 바로 양폭산장으로 갈수 있는 무너미고개에 이른다
<13:55 소청봉>
무너미 고개에 도착 하니
인심 좋은 젊은이 둘이 지친 나의 모습을 보며 소주 한잔을 권한다
그걸 받아 마시면 난 당장 그곳에 드러누워 잠을 자야 한다
고맙다며 간신히 사양하고 회운각에 도착하니 12시27분,
피곤한 몸을 등대고 어디 조용히 앉아 쉴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회운각 부근은 많은 등산객들로 뒤덮여있다.
회운각 매점에서 배낭에 한 병 남은 이온음료를 끝까지 아끼려
이천 원을 주고 캔 하나를 사 마시니 얼마나 시원한지...
오늘 예정은 회운각 산장 뒤로 나있는 대간 능선을 따라
곧장 대청봉으로 오르려 했지만 출입구를 봉쇄하여 놓았고
출입구 부근은 많은 인파로 막혀있어 할 수 없이
소청으로 올라가는 정규등산로를 택하기로 하였다.
회운각에서 바로 시작되는 철사다리 오르기는 정말 힘이 들다
전에는 철사다리가 없어 가파른 비탈길을 비구니스님들이 까만 고무신을 신고
날렵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여가 선용의 여파로 철사다리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보니
육중한 철사다리 무게만큼이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설악의 경관이 얼마나 더 철사다리로 훼손되야 하는지......
내륙에서는 지리산 다음 높기도 하지만
경사도 급해 회운각에서 소청을 오르는 길은 정말 힘이 들다
이제 나의 체력도 거의 바닥이 난 것 같다
게다가 어찌나 내려오는 사람이 많은지
간혹 어깨라도 부딪치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몇 번을 쉬며 거의 기다시피 소청봉에 오르니 만사가 귀찮다.
<14:40 대청봉>
그냥 이대로 자고 싶다. 그러나 이제 힘든 고비는 다 넘겼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대청봉만 오르면 그때부턴 탄탄대로 내리막이 아닌가.
천만다행으로 이곳 소청봉에도 간이 매점이 있다
단풍철이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전에는 없었는데 음료수를 팔고 있다
나머지 한 병을 아끼려 여기서도 캔 음료 하나를 사니 값은 회운각과 마찬가지다
나는 너무도 힘들여 회운각에서 여기까지 올라왔기에
회운각보다 여기가 더 비싸야 되는 것 아니냐 농담삼아 물으니 그냥 웃기만 한다
좀 앉아 쉬며 체력을 재충전하여 사력을 대해 군 시설물이 있는 중청을 지나고
중청 산장을 통과하여 지친 몸을 철 난간에 의지하며 드디어 대청봉에 올랐다
지난밤 미시령을 출발한지 13시간 30분 만에 이곳에 도착했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은 것 같다.
설악산!! 흔히들 대청봉을 이렇게 부른다
소청이고 중청이고 끝청이고 다 설악산이다
내가 처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 삼십대 후반이었는데 처음 오른 산이 바로 이 설악산이다
그때 난 대청봉도 몰랐었다.
한창 일 할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옥계의 친구 집에서 휴양하기로 하였다
그때 집을 떠나며 내 자신과 굳게 약속했다
반드시 병마와 싸워 이긴 후 나의 건강에 대한 확인으로
꼭 설악산엘 오르지 않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노라며....
지금은 나의 집과도 같은 김포의 문수산도 그 땐 산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오른 적은 없던 때였다.
그리고 몇 달 후 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나무로 깎은 지팡이를 짚고서 이곳엘 처음 올랐었다.
장엄한 설악의 산세와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설악의 경관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저 밑에 마치 성냥갑보다도 작게 보이는 오물조물 작은 집들을 오래도록 바라봤었다.
‘저 작은 곳에서 사람들은 살고 있으면서 이 세상을 그렇게도 시끄럽게 살고 있구나...
여기에 이런 별천지가 있는데....’
그 후 난 설악을 자주 찾게 되었고
지금은 나에게 모든 산이 다 설악산이다...
내 고향 김포의 자그마한 문수산도 역시 설악산이다.
<15:50 끝청봉>
3시 정각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
서쪽에 기운 해를 바라보며 대청봉을 출발하여
중청 산장을 지나 바로 소청으로 가는 길과 한계령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길목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한계령으로 향한다
아까보다는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이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하는 막바지 구간이
거의 완만하게 내려가는 부드러운 능선길이기에
마음이 편안해진 까닭이기도 하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오르막 몇 곳을 지나
작은 암릉으로 되어있는 끝청 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몸이 지쳐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밥 먹는 것을 포기하고 토마토를 입에 넣으니 한결 낫다.
끝청 에서 용아장성 능선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장관이다
공룡능선에서 보는 것 보다 그 반대편인 이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훨씬 그 경관이 일품이다
용아의 그 날카로운 압봉들의 전면이 거의 이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17:55 귀떼기청봉 삼거리>
끝청에서 한 차례 내리막을 내려서 한계령을 향하는 이 길은 공룡능선보다 훨씬 좋다
돌도 거의 없고 넓고 평탄하다
공룡능선에 비하면 이곳은 비단길이라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이 배부르고 편하면 눕고 싶다고 했던가
길이 넓고 평탄하여 걷는데 별로 신경을 쓸 것이 없으니 잠이 쏟아진다
하품은 말할 것도 없고 눈물까지 난다 자고 싶어서...
한계령과 귀때기청봉 갈림 삼거리에 다가오면서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등로에
너덜 바위들이 있어 조심을 해야 할 곳이 간간히 있고
작은 오르막이지만 편안함을 만끽하도록 그냥 두지 않는 곳을 올라
작은 안부에 내려서면 귀떼기청봉으로 가는 삼거리다
직진하면 귀떼기 청봉을 거쳐 서북능선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계단을 내려서면 한계령으로 향한다 .
<19:25 한계령>
삼거리에서의 내리막길은 철 난간 공사를 끝낸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바위를 뚫을 때 나온 돌가루들이 즐비하다
여기도 이제 설악의 아름다움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밧줄이 매여 있어 그걸 붙잡고 힘들여 오르곤 했는데..
이제 해는 완전히 넘어가 설악에 또다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마침 한계령으로 가는 몇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 동행하려 하였지만
지친 나를 뒤로 하고 내 앞에서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수년간 별러왔던 설악 종주 산행을 혼자서 거의 끝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지막 오르막을 희미해진 랜턴 불빛으로 더듬어 오를 땐 웬 힘이 그리도 솟아나는지....
한계령 위 마지막 봉우리를 단숨에 치고 올라왔다
한계령으로의 내리막에는 미끄러운 자갈과 모래도 많아 등로 상태도 별로 좋지 않지만 거침이 없다
이따금씩 왼쪽 양양 쪽에서 한계령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벅찬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에 겨운듯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힘겹게 한계령을 향해 기어오르는 것처럼 내려다보인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 지친 발걸음으로 딱딱한 시멘트 계단을 비실비실 내려서니
짙은 어둠 속에 한계령 휴게소가 가로등 불빛 속에 나타난다 (19시 25)
새벽에 미시령을 떠난지 18시간 15분이 되었다
줄곧 능선만을 걸었고
좀 얕다고 하는 미시령과 한계령에서는 어둠 속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설악의 그 곱디고운 단풍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행여나 길 건너 점봉산 방향 시커먼 어둠속의 설악을 향해
오늘 어둠 속에서 고마운 역할을 해줬던 랜턴을 몇 번씩 돌려가며 비춰 보지만
그 산자락에 붉은 단풍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별러왔던 설악 종주 산행을 끝냈는데도
이제 어떻게 미시령에 있는 자동차를 회수해야 하나,
속세에 내려오니 또 걱정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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