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記

치악산에서 매화산까지..

루이스. 2011. 7. 28. 10:52

치악산(稚岳山).비로봉에서 매화산 까지.. 2004.09.18 맑음

 

 전에 가리파 고개에서 남대봉. 비로봉 천지봉을 지나 청소년 수련장 갈림길 까지 산행을 하였지만

그날의 일정상 매화산 까지 못간 것이 못내 아쉬워

매화산을 다시 찾아 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르다 새말I.C 내려 우회전하여 조금 가서 42번국도로 진입하여

치악산 국립공원 이정표(원주 방향)를 보고 가다 삼거리에서(우측에 학곡 저수지가 있음)

치악산 국립공원 구룡사 이정표를 따라 4km를 가면 구룡 매표소에 이른다.

 

 05:00 주차장 관리인은 물론이고 매표소 직원조차도 곤히 잠들어 꿈속을 혜메고 있는지 인적이 없다.

몇 번을 이곳에 왔었지만 오늘따라 매표소 우측 계곡 물은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다소 우렁차리 만한 큰소리 내며

누워 잠자고 있는 바위들을 흔들어 깨우는듯 소리 내어 흐르고 있다.

 

그건 고요한 적막을 깨는 소리가 아니고

어둠이 덮은 하늘에 저마다 그 초롱초롱한 빛을 마음껏 발하며

금방이라도 나의 머리위로 쏟아 내릴 것 같은 저 수많은 이름모를 크고 그리고 작은 별들에게

그 소리 멀리에까지 들려주려 하는 것 같다.

어둠이 깃든 초저녁 밤하늘을 환히 밝혀주는 둥근 보름달도 아름답지만

저마다의 밝은 빛을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촘촘히 모여있는 저 새벽 밤하늘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05:04 굳이 밝은 해드렌턴 불빛에 의지 하지 않더라도

영롱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머리에 이고

바닥에 돌을 깔아놓은 넓은 길을 걷다보면

계곡을 건너는 구룡교 을 건너 돌거북 식수대을 지난다.

길우측으로 어둠에 묻힌 구룡사를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이곳 치악산에는 많은 비가 왔는지 산비탈인데도

곳곳에 많은 물이 길 위로 쏟아져 흐르고 있다.

 

 05:45 세렴폭포 갈림길

세렴폭포 0.1km 비로봉 2.7km 구룡 매표소3km 이정표가 있다.

어둡지만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많아 세렴폭포도 장관일 것 같아 들러 보았다.

3~4 m 높이의 2단 폭포인데 주 계곡이 아닌 지류에서 떨어지는 폭포여서 그런지

계곡에 흐르는 물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05:50 세렴폭포를 들렀다 다시 돌아와 아치형 철다리를 건너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 길은 계곡을 따라서 비로봉을 오르는 길이고

좌측 길은 사다리병창 능선을 따라 비로봉을 오르는 길이다.

우측 길을 버리고 좌측 사다리병창 능선길 로 접어들어 급경사 오르막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밝아오는 여명에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앤 아직도 샛별이 빛나고 있다.

 

 06:25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한동안 힘들여 오르면 해발 700m 사다리병창 표시판이 있는

사다리병창 암릉이다.

말이 암릉이지 양쪽에 난간이 되여 있고 바위도 넓적넓적하여 걷기도 편하고 위험하지도 않다.

높이도 기껏해야 5~6m정도여서 암릉이란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 곳이다.

헌데 치악산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바위와 암릉이 거의 없는 육산이다.

이곳 사다리 병창이 유일한 암릉 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차장이 해발 200여 m 정도이여서 1100m정도를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르기가 그리 쉽지 않은 산이다

특히나 사다리 병창 코스는 능선은 짧은 것 같지만 오르막이 가파르기 때문에

비로봉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일예로 설악의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의 높이가 1200m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그리 수월치 않는 코스이다.

 

 06:45 비로봉1.1km 세렴폭포1.6km 구룡사 3.7km 이정표에서 지친 몸을 달래본다.

조망이 거의 없는 지루한 오르막이 여서 그런지 힘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07;34 산죽이 가끔 나타나는 급경사을 잠시 오르면 전망도 트이고

여러곳에 전에 볼수 없었던 철계단이 많이 설치되여 있다.

전에는 나무를 붙잡고 매달리다 시피 올랐던 정상부근 급경사에도

지금은 편히걸어 오를수 있게 계단이 설치되여 있다.

힘들여 올랐으니 잠시 쉬여가라며 계단 우측에 만들어논 전망대를 지나

계단을 마저 오르면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이다.

 

 정상은 암봉으로 되여 있고 사람키보다 훨씬 크고 둥근 돌탑 3개가 있다.

치악산 비로봉1288m 쓰인 표시석이 있고 표시석 뒤쪽 3~4m 떨어진 바위위에

삼각점이 부러졌는지 시멘트로 사각의 대리석 을 세워놓은 흔적이 있다

치악산 능선을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이곳에서의 조망은

앞이 탁 트인 시원함도 있지만 웅장하게 뻗어있는 능선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서쪽멀리에 까치와 구렁이의 전설 상원사가 있는 남대봉 이 보이고 향로봉. 곧은치.비로봉 으로

이여지는 주능선이 광활하게 보인다

동쪽으로는 남대봉보다 훨씬 가까이 있고 비로봉보다도 훨씬 얕은 산인데도

훨씬 멀리에 있는 것 같고 더 높아만 보이는 천지봉과 매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08:00 정상 표시석 뒤 삼각점의 흔적이 있는 바위를 내려가

우측으로 90도 꺾어서 내려가면 천지봉 가는 길이다.

전에는 천지봉 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라 출입금지 지역이다.

그냥 찾아 갈만한 뚜렷한 길이다.

 

 08:05 변암 갈림길

첫 번쩨 맞는 삼거리이다.

히미한 우측길은

 

興亡(흥망)이 有數(유수)하니 滿月臺(만월대)도 秋草(추초)로다.

五白年 王業(오백년 왕업)이 牧笛(목적)에 부텨시니

夕陽(석양)에 지나는 客(객)이 눈물 겨워 하노라.

 

이 시를 남긴

고려말 이성계의 조선왕조 창건에 은일(隱逸)의 길을 택했던

운곡(耘谷)원천석(元天錫)선생이 기거했던 변암(弁岩)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가래골 쪽으로 15분정도 가면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잠시 운곡 원천석 선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이성계의 친구이자 태종 이방원의 스승 이였던 운곡 원천석 선생은

이성계 .이방원 부자에 의하여 고려가 멸망하게게 되자

고려의 수도 개성을 떠나 이곳 해발1000m이상의 변암에 기거하며

때때로 백성들을 위하여 각림사 등지에서 많은 강론을 하였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그 터에는 강림면사무소와 우체국이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 인데

지명이 강림리((講林里)인 까닭은 운곡 선생이 강론을 할때(講)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林)하여

강림(講林)이라 하였다 한다.

또다른 일설로는 각림사(覺林寺)의 覺林(깨닭음)의 발음이 불편하여 강림 으로 되였다는 말도 있다.

 

이방원이 조선의 삼대 째 임금으로 즉위하니 이가 곧 태종이다.

태종은 스승을 모셔다 가르침을 받고자 치악산으로 운곡 선생을 찾아오지만

운곡 선생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고 만다.

태종이 수레을 타고 넘은고개(현치악산 드림랜드 쪽 다리골에서 강림리와의 사이고개)를 수래넘이재 라하고

그 수레가 머물렀던곳 “차유”(車留)는 현 강림4리의 자연부락 이름이다.

 

태종이 운곡 선생을 찾아가다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 곳에 이르러

빨래를 하고 있는 한 老 ‘女+區(노구)를 만나게 되어 혹 운곡 선생이 지나가지 않았는지를 물어

노구가 가리킨 길을 따라 찾아보았으나 운곡을 찾지 못하였다.

운곡 선생이 지나갈 때에도 노구는 빨래를 하고 있어 누가와서 찿거든 다른 쪽으로 알으켜 주라

노구에게 말하고 산으로 들어 갔던 것이다.

 

노구는 태종이 운곡을 찾아 떠난 다음에야 임금인 줄을 알게되어

그 죄책감과 송구스러움에 스스로 깊은 물에 빠져 목슴을 끊었다 한다

지금도 노구가 빨래를 했던 바위에 ‘女+區 淵’(구연) 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있고

이 곳을 ‘老姑沼’(노고소)라 하며 노구가 가리킨 곳을 ‘橫指岩’(횡지암)이라고 한다

운곡 선생을 찾다가 태종이 잠시 머무른 곳에 ‘駐蹕臺’(주필대)라는 돌비석이 서있고

그 밑 커다란 바위에는 ‘太宗臺’(태종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몇일 을 머무르며 운곡 선생을 찾던 태종은 끝내 스승을 찾지 못하자

스승이 있는 산을 향하여 절을 하고 도성으로 어가를 돌렸다고 한다.

그때 태종이 절을 했던 산은 ‘拜向山’(배향산)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운곡 원천석 선생을 절개를 지킨 지조 있는 선비의 표상으로 숭앙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 2000년 6월 종중 일로 원주의 향토사학지 김호길 씨와 함께 석경사 등

운곡선생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몇일뒤 부곡리 가래골을 따라서 변암까지 답사를 한 일이 있어

그때 산행기를 발췌하여 적어 넣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변암 엘 들러보고 싶었지만 갈 길도 멀고 다시 올라올 일을 생각하니

힘도들 것 같아 좌측 직진길로 접어든다.

 

 08:12 내리막이지만 작은봉우리 하나를 넘어 좌측에 엄청 오래된 것 같은 고사목 하나가

만고풍상에 시달려 굵은 나뭇 가지는 그 흔적도 없고

속이 텅비고 그나마 반쯤 남은 나무기둥이 안간힘을 쓰며 비스듬이 서있다.

 

08:35 힘들이지 않고 내려오는 내리 막이지만 내려온 만큼 또 힘들여 올라야할 걱정을 하며

배너미재 에 도착.

좌측에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세렴폭포 쪽으로 가는길 같다.

직진하여 급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08:50 힘들여 오르막을 올라 희미한 삼거리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

우측 히미한 길을 버리고 좌측 북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09:30 돌하나 없는 순하고 순한 능선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 몇 개를 넘어

두 번째로 길이 갈리는 봉우리에 도착.

이곳에서 우측 북동쪽으로 방향을 다시 꺾어 길을 재촉하여

 

 10:15 비로봉을 떠난지 처음으로 조망이 좋은

비스듬하고 널찍한 바위에서 비로봉을 바라본다.

치악산 그 어느 곳에서 바라 보더라도 볼수 없는 치악의 모습이

산자락 밑에서부터 비로봉 끝 위에까지 웅장하게 보인다.

그 정상에서부터 빗질을 시작하여

산자락 끝에까지 빗어내린 듯 쭉쭉 뻗어 있는 저 산자락들이 정말로 아름답다.

배너미재 까지 내려온 능선이 하늘과 맞 다아 굴곡을 그리며 미끄러지듯 내려 온것 같이 보이고

배너미재 에서 힘들여 올랐던 오르막은 예각의 삼각형을 오르는 것 처럼 힘겨워 보인다.

 

 10:27 경치좋은 바위에서 얼마 안가

눈앞에 오르기 싫은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면 천지봉이다.

매화산 ← 1086.5m → 시루봉 이라 쓰인 스텐레스 표시판이 있다.

안흥444 라 쓰인 삼각점도 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로 조망이 없다.

 

 10;50 야영장 수련원 갈림길

비스듬한 내리막을 잠시 내려오면 안부 좌측 계곡으로 떨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몇 년전 치악 종주때 이곳에서 어둠을 헤치며 내려가던 기억이 떠올라 감회에 젓는다.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이제부터는 초행 낯선길을 더듬어 올라가야 하나보다.

바짝 긴장이 된다.

비로봉에서 이곳까지는 전에 한번 걸어 보았었고 길도 비교적 순탄하여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부터는 나침판과 지도를 번갈아 보아야 겠다.

비로봉부터는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다.

 

 10:55 능선갈림길

수련원 갈림길에서 더 히미해진 길을 힘들여 오르면 또 갈림길이다.

전망이 없어 오늘 처음으로 지도와 나침판을 사용한다.

이제 믿을건 지도와 나침판 밖에는 ....

사람의 경험도 정확하게 기억해 내야 하는 것이므로

그 마음이 바뀌면 눈도 바뀔 때가 있는지라

자연의 진리 앞에는 그 어느것도 정확한 것이 없다.

과학이란 것이 자연의 법칙을 이용한 것이니까 ...

애매모호한 갈림길에서 나침판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우측으로 접어든다.

 

 11:25 수레너미재

갈림길 능선에서 계속 급경사의 내리막을 꼭구라 질듯 한동안 내려오면

우측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니 내려와도 엄청 내려온 것 같다.

천지봉과 높이가 거의 엇비슷한 매화산을 다시 오를 일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거의 다 내려와 얕은 언덕 두엇을 넘으면 커다란 고목 두그루가 서있는 수래너미재 이다.

 

이곳에 이르려고 앞에서 장황하게 운곡 원천석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태종이 운곡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서울에서 이곳까지 의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기쁨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고개에 올라 서지금은 메워지고 이름모를 잡초들로 엉켜있어

그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측 길을 따라 강림리로 내려갔을 것이다.

이곳에서부터 변암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의 흔적들을 남기며 스승을 만나지 못한 통한의 마음을

태평성대 덕치의 꿈으로 달래며이 고개를 다시 넘어와 어가를 한양으로 돌리지는 않았을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지조 있는 선비의 표상이 운곡 원천석 선생 이였다면

왕의 신분임에도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멀고도 험준한 이곳 치악 준령에 까지 그를 찾아온 태종을 어떻게 이야기 하여야 할까...

 

고려말

피비린내 나는 많은 정변의 맨 앞에는 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사가들은 그를 태종대왕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역사속에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운곡선생 과 태종대왕 의 흔적들이

이 수래너미재 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태종대왕이 오르내렸던 길을 가로질러 매화산과 천지봉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들 만이

이따금 이곳을 지난다

수령 수백년이 넘었을 커다란 이끼낀 고목 두 그루 아래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힘겹게 오를 오르막을 근심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흐르는 땀 닦으며 쉬여가는 곳이다.

리본이 많이 달린 좌측길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직진하여 매화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12:03 급경사에 힘들여 오르는 오르막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바위들이 나타나며 가뜩이나 힘든 몸을 더 지치게 한다.

나이 지긋한 세분이 매화산 에서 내려오시며 길이 험하니 조심하란다.

하산길을 염려하여 드림랜드 로 내려가는 길을 여쭙니

매화산 정상에서 다시 오르던길로 10여 m 돌아와 매화산에서 오면 우측으로 난길로 접어들어

커다란 핼기장이 나오면 그곳에서 좌측으로난 길로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신다.

능선을 올라 좌측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우측 소나무 사이로 매화산 정상부근 인듯한데

아주 커다란 기암절벽이 단애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보인다.

 

 12:20 험하다고 하여 긴장을 하였었는데 오르는 길이라 그런지 그리 힘든길은 아니다.

릿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를 쓰고 올라갈 암릉을 우회하고

곧 이어 부드런운 오르막을 잠시 오르다 좌측 갈림길을 지나면 평편한 매화산 정상이다.

첫눈에 띠는 것은 똑바로 치악산 비로봉을 향해 누워있는 묘 1기이다.

비교적 잘 다듬어저 있고.사선도 뚜렷하여 그쪽을 향해 있음을 알수 있다.

 

매화산 1084m을 알리는 스텐레드 표시판이 친절하게도 하산길 까지 아르켜 주고 있다.

직진하면 전재로 내려가고.우측은 북바위골

오던길을 돌아가면 천지봉이나 드림랜드로 가야하는데

표시판에는 사거리로 표시되여 있는데

아마 좀전에 지난 드림랜드 로 가는 삼거리방향 까지를 편하게 표시하였나 보다.

1977에 설치한 삼각점이 있다.

 

 묘터가 있으니 전망이 안좋을 리가 없다.

남서쪽 으로 비로봉이 보이고 걸어온 능선따라 좌측으로 천지봉도 보이고

꼬구라 질 듯 내려오던 수래너미재 까지의 급경사 내리막길이 순하게 늘어져 있다.

 

 01:15 점심식사 을 이곳에서 끝내고

원래는 하산길이 가장 짧고 길도 잘 나있는 전제로 하산할 예정 이였지만

시간도 여유가 있고 또 자동차를 회수하기에 가장 좋은곳

드림랜드 쪽으로 하산기점으로 잡고 하산을 시작한다.

목적지인 이곳 까지 다 왔다는 성취감과

이제부턴 내리막 하산 길 이라는 여유로움 으로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하지만 점심식사 때 옆에 묘 가 있는데“고시래”를 소홀히 한 탓인지

4시간여에 걸친 하산길은 산행경력에 있어서 중산리에서 지리 천왕봉을 오른는 힘들음보다도 더한

전대미문의 고달픔으로 점철될 줄을 그 어찌 알았겠는가...

시금털털한 김치대신에 육포라도 놓아드렸어야 했었고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술 대신 물을 찔끔 딸아 부어 드렸다는 사실이다.

술도 없고 잔도 없어 할 수 없었으나 노여움을 타기엔 충분한 처사였음을 이제야 ...

담부턴...

 

 13:25 오던길로 되돌아 10 여m 정도을 가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방향을 잡는다.

좌측은 천지봉 으로 가는 길 즉 아직 까지 걸어온 길이다.

신나는 내리막길을 힘 드리지 않고 걷다보면

얼마나 오래 되였는지 알수 없는 속이 텅빈 고목을 지나

조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100평도 넘을 것 같은 아주 넓은 헬기장이다.

누군가가 주위를 깨끗하게 제초작업을 하여 놓았다.

좌측에 길을 찾아봐도 길이 없고 직진하는 길뿐이다.

직진길을 따라 내려가면 길이 뚜렷해지고 길도 넓어진다.

<흠.. 드림랜드에 쪽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 길이 좋은가 보다..>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이 가벼운 발걸음이 천근 쇠뭉치가 되여 다시 힘들여 끌며 올라오게 될 줄이야....

 

 13:50 습기가 많은 사면길을 돌아 내려오고 한아름도 넙는 커다란 소나무가 즐비한 곳을 지난다.

지도 상에는 분명히 40m 이상을 오라야 할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아직도 안 보여 으아스럽기만 하다.

봉우리 대신 오랜만에 만나는 바위군 옆을 지나 내려서 안부에서 40대 중방의 한사람을 만났다.

버섯을 따는 사람 인데 드림랜드 가는 길이 아니고 오원저수지 쪽으로 내려간단다.

지나온 헬기장 좌측에 드림랜드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니 잘 찾아보란다.

어디로 내려가든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예정된 드림랜드 쪽 으로 가자 마음을 추스르고

혤기장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4:48 목적이 없는 고생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그말을 생각하니 더 힘이든다.

흐르는 땀훔치며 핼기장 엘 올랐다.

오르면서 소용없이 흘린 땀방울은 그 얼마이고

땀 흘린 만큼 무거워진 두 다리의 통증은 또 어떻고....

 

 15:00 10여분 휴식을 하고

혤기장 직진길에서 좌측으로 7~8 m 정도 떨어진곳에 베어놓은 풀들로 가려진 흐미한 길을 찾아

한층 무거원진 다리를 이끌며 내려간다.

 

15:38 급경사의 히미한 길을 나무에 의지하면 한참을 내려오면

한 아름도 훨씬 넘은 굵고 커다란 노송들이

하늘을 향해 늠름하게 무리지어 서있다.

 

크고 굵은 소나무가 늠름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아서 인가 체력이 좀 나아진 것 같다.

좌측으로 천지봉가는 오르막 능선과 매화산 으로 가는 능선이 보인다.

 

15:45 관리를 하지 않아 잡풀로 뒤덮힌 자그마한 혤기장을 지난다.

 

 16:04 지도 상에서 마지막 봉우리 인것같다.

북쪽으로 방향을 약간 틀어서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을 지루하게 오르내린다.

 

16:15 두발이 넘는 밑둥이 틀어진 굵은 노송이 있는곳을 지나 나침판을 보니

방향이 자꾸 북동쪽으로 틀어져 마음이 불편해진다

드림랜드는 북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길을 놓친 것 같다.

지도상에 등산로 표시는 안되여 있지만 내려오면서

주위깊게 좌측으로 갈리는 길을 찾았어야 하는데 찾지를 못하였나보다

맥이 풀려버린다.

좀전 마지막 봉우리에서 눈여겨 찾아보았어야 했을 것이다.

어차피 이러줄 알았으면 처음내려 갔었던 곳으로 그냥 내려 갈 것을....

하는 수 없이 다음기회가 있으면 다시 찾아보리라 다짐 하며 불편한 마음을 달랜다.

 

 17:00 점점더 히미해진 길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소나무가 많은 곳에 이르니 아래에 아파트 공사장이 보인다.

더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며 내려와 보니 코레스코 콘도 다.

콘도 앞의 42번 국도는 우측으로는 안흥.평창으로 가는 방향이고 좌측은 횡성.원주로 가는 방향이다.

이곳에서 뻐스를 타면 학곡저수지에서 내려 다시 구룡사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드림랜드 쪽으로 내려오려했던 것인데....

 

버스를 기다리기도 힘이 든다

마침 코레스코콘도 에서 나오는 카니발 차를 세우니 태워주신다.

횡성에 사시는 이희성 씨인데 산을 좋아 하시는 분이다

산에대한 몇 마디를 나누는사이 어느새 친한 벗이 되여 한사코 학곡저수지 까지 태워다 주신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오면 꼭 전화 하라시며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신다.

 

 

학곡저수지 삼거리에서 멀이 보이는 수래너미재 를 바라보며

지치고 힘든 몸이지만 운곡선생의 시 한수 를 되 뇌이려 애를 써 본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 던고

구불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 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