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년 늦은 여름휴가
첫째날 9월 29일 전남 영암 월출산 (아주 맑음)
올해도 벌써 반을 훌쩍 넘어 2/3이 지났다.
나이가 점점 먹어갈수록 그레 비례 하여 세월의 흐름도 살같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지금...
어쩌면 올 휴가가 마지막 일주일간의 여름휴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보다는 산을 더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며 갖가지 물증을 들이대면서도
끝내는 냉장고 안에 있는 시금치는 상하기 쉬우니오이를 넣는 것이 좋다면서 장바구닐를 집어들고
시장으로 달려갔던 아내와 함께 하기로 하였다.
세력이 엄청 큰 16호태풍 “차바”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며 어쩜 우리나라를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하고
하늘은 회색구름으로 잔뜩 흐려 있어 근심스런 마음으로 이를 바라보며
8월 28일 오후 5시 집을 나섰다.
다행히 이런 걱정과는 달리
서해안 고속도로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갈수록 환해지는 하늘을 보니무언가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 감사한 마음이 생길수록 무척 상쾌하기도 하다.
군산을 지나니 둥근 보름달 환한 달빛 속에서도 초롱초롱한 수많은 별빛들이
달리는 차창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 보여
그 옛날 밀거적 위에 누워, 밤하늘 바라보며 나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별들을 혜아리던
그 때 그시절이 떠올라, 잠시 어린 동심의 세계로 돌라가는 것 같기도 하였다.
8월 29일
누가 태풍이 몰려온다 했던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07:40분 전남 영암의 천황사 주차장에서 월출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주차장에서 포장길을 따라서 걷다보면 야영장에 이른다.
바로 야영장을 지나며 좌측에 등산로 입구 표시판이 있는 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작열하는 태양빛이 무척이나 뜨겁다.
작년 9월 산빛사랑의 정기산행지 였던 영암의 월출산...
산을 즐겨 찾지 않는 이라도 꼭 한번쯤은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산이다.
812m 높이에 갖가지 아름다운 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진 웅장한 암벽 기암괴석들의 모습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절경이다.
꼭 이번만큼은 이곳엘 와야 한다는 은근한 아내의 협박(?)이 있기도 하였고....
08:50 구름다리
등산로 입구에서 순탄한 길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구름다리로 향하는 오르막 길을 오른다.
좌측길은 계곡을 따라가다 구름다리나 바람폭포를 지나 천황봉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다.
국립공원이여서 표시판도 잘 되어 있어 길 찾는데 어려움이 없고
등산로도 잘 다듬어져 있어 어린이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몇 달전 다리를 다쳐 회복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게다가 허리통증으로 몇 달째 산행을 하지 못한 탓인지
아내의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나 역시도 이제 가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호흡이 가쁘고 쉴 사이 없이 흐르는 땀이 손수건을 적신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천길 낭떨어지를 이어주는 구름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름다운 월출산의 비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아찔함에는 오금이 저려온다.
바로 앞 바람폭포 쪽 능선과 좌우를 돌아보면 그 웅장한 암벽들과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여야 할지.... 내 짧은 글로서는.....
*****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6일 오후시간이다 *****
구름다리 이야기를 쓰니 그곳에서 정기산행 때에 찍은 사진이 생각난다
사람은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추억 속에 담고 싶은 것이다.
여명이 트는 그 다리 위에서.떠오르는 아침해가 그렇고, 피어나려는 이슬 머금은 한 송이의 꽃봉오리가 그렇고,
지는 해 일몰의 아름다움도 그렇고,지금 내 눈에 보여지는 자연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를 말이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주었던 그 회원도 옆에 같이 했던 그 회원도 지금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그렇다.
구름다리에서 철계단을 올라 가파른 바위능선을 올라 일출을 보았던 바위봉우리에는
지금 우회로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계단을 만들어 앞으로는 힘들여 바위 봉우리까지 올라오지 않아도 수월하게 옆으로 돌아서 천황봉을
갈 수 있을 것이다.
편하면 편할수록 그만큼 자연의 아름다움은 훼손되는 것인데
왜 자꾸만 편하게 산을 오르려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곳에서 내리막을 내려가 순탄한 길을 가는데
앞에서 오던 여자 등산객 한분이 썬그라스가 튕겨 나갈 정도로
쎄게 나뭇가지에 이마를 부딪친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지만 그 비명소리로 보아 꽤 오랫동안 고생을 할것같다
아마도 더운 날씨에 집중력이 저하되어 앞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날씨가 더워 비실비실 흐느적 거리면서 초록색의 철계단 난간에 의지하여
10:05 통천문을 지난다.
항상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고, 커다란 바위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문을 지나야
비로소 천황봉에 오른다 쓰여 있는데, 오늘은 바람이 부는건지 어쩐지 그냥 덥기만 하다.
10:15 천황봉
바위로 된 암봉이다.
날은 덥지만 시야는 좋다
이곳 지리에 익숙치 못하여 그저 발 아래 아름다운 모습만 보일뿐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산빛의 정기산행에서 도갑사 까지 종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내에게 오늘 걸어야할 코스를 따라서
저건 구정봉이고 저길를 따라 걸을 것이다 설명 할 수가 있었다.
더위를 피해 그늘진 곳에서 간식을 들고 있는데
아뿔사 !! 생각이 난다~~~
겨울용 Gas을 차안에 두고 온 것이다
일반 Gas 보다도 성능이 우수하여 한겨울에 사용하면 그 성능이 탁월하다.
성능이 탁월하다는 이야긴 폭팔력이 강하고 화력이 우수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거의 다 쓰고 바닥에 조금 남은 것 같고
태풍도 몰려오고 오늘 오후에야 비가 내린다는 말만을 믿고 그냥 올라온 것인데
이렇게 태양이 작열할 줄이야...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무아래 에 차를 세워 놓았기에
오후 2~3시까진 직사광선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불안하다.
어쩔 수 없이 도갑사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하산을 하기로 하였다.
꼭 같이 월출산 종주를 해보고 싶다던 아내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천황봉에서 구름다리 가는 등산로로 내려오다 보면
통천물을 지나서 얼마 안되는 곳에 바람폭포 로 내려가는 표시판이 있다.
10:30 바람폭포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천황봉을 오르는 최단 지름길 이여서 그런지 제법 올라오는 이들이 많다.
조금을 내려오니 우측으로 구름다리가 저 멀리에 장난감처럼 내려다 보이고
반대편에서 그 구름다리 능선을 바라보는 경관도
아마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급경사 내리막길이지만 역시 국립공원답게 길은 좋다.
햇볕은 여전히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데,
젊은 삼십대 후반의 남자 한분이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을 듯한 여자 아이는 걸리고
그 보다도 더 어린 남자 애를 안고 구슬땀을 흘리며
그 비탈길를 오르고 있었다.
햇볕을 가리느라 아이 얼굴에 수건을 씌워서 인지
세상모르고 콜콜 잠자고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산에서
작열하는 태양아래 땀 뻘뻘 흘리며
그 흘리는 땀, 많이 흘리면 흘릴수록 그 만큼 더 산을 사랑하며
그 못지 않게 가정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넉넉한 가슴 안에서 잠자고 있는
저 아이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그리고 아빠를 따라서 씩씩하게
저 높은 천황봉을 올라가고 있는 여자 아이는
훗날 그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며 아름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
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서
삼십 여분 천천히 내려오면 우측으로 길이 꺾이면서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선다.
얼마나 시원한지...
뒤에서 아주 경쾌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온다.
신사동 그 사람 이란 곡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한분이 경쾌하게 하모니카를 연주 하며서 우리을 앞질러 간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지금 내가 듣기엔 최고 수준급인 것 같다.
아름다운 하모니카 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11:25 바람폭포
이름이 폭포이지 폭포라 부르기엔 좀 그렇다.
가뭄 탓도 있겠지만 좀 과장하면 지금 내가 흘리는 땀 만큼도 못한 것 같다.
그냥 가느다란 물줄기가 10m 높이에서 졸졸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미 밑에 고인 물에 탁도가 있을 정도이다.
그건 등산객들이 지나가면서 수건도 적시고 세면도 하였기 때문 일 것인데
물의 양이 그 정도로 적다.
시원한 그늘의 연속이다. 이젠 구름다리가 고개를 쳐들어야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구름다리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 한적한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12:40 주차장에 도착 하였다.
우려 했었지만 생각대로 아직 햇볕이 자동차를 덮치지는 않았다.
Gas 통을 꺼내 만저보니 상온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것 겉다.
매사에 준비성하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계획했던 산행은 포기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생각하며
문제의 그 Gas통을 몇겹을 종이로싸서 상자 깊숙한 곳에 넣고
목포 북항을 들러서 다음 목적지인 경남 합천 해인사로 향한다.
둘째날 9월30일 경남 합천 해인사(海印寺) 약간 흐림
여정의 피로함이 누적된 산태에서 강행한 월출산 산행에 이어, 목포를 거쳐 가야산이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까지 한밤중에 달려와 그 피곤함의 절정으로 오늘은 법보 종찰인 해인사를 들어보는 것으로 일정
을 잡았다.
특정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인터넷상에 올려놓는다면 행여 타종교의 신도들께서 보신 후 ,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산행기를 쓰다보면 자연히 산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의 이름을 거론하게 되기 십상이다.
또 일단 거론이 되면 직접보고 들은 대로 적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잠시 해인사에 대하여 기술 하고자 한다.
참고로 본인은 아직까지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고 오로지 산만을 열심히 찾아 다니고 있고, 훗날에도
어느 한 산자락 끝이 영원한 나의 안식처가 될 것 이라 믿고 있다.
경남 합천군 가야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海印寺)는 승보종찰 송광사와 불보종찰 통도사 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사찰로 불리운다.
불교에서 삼보(三寶)라 함은 법보,승보,불보 로써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고
부처님의 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모신 통도사, 그리고 송광사는 고승의 유물을 모시고 있다.
해인사는 서기 802년에 지금의 대적광적 자리에 창건하였다 한다.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자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로써 화엄종의 근본정신인 화엄경은 대승경전의 초고봉으로 동양문확의 정수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海印寺) 라는 이름이 이海印三昧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을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고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海)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고 한다.
오후 2:00 해인사 주차장에서 해인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르면 커다랗게 가로로 지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이 앞을 가로막는다.
박물관 좌측을 지나 조그마한 “허덕교”다리을 지나 사멘트로 포장된 보행자 전용도로를 5분 정도를 지나면 우측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보이고
해인사 이정표를 따라 가면 좌측에 마치 허리가 꼬인 듯한 키큰 고목이 한그루 서있다.
조금 더 가면, 우측에 성철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성철 대종사 사리탑은 5m 이상의 돌계단 위, 조경이 잘된 수백평의 넓은 터에 자리잡고 있고,
지름 20여m정도의 서서히 높아졌다 낮아지는 원형의 참배단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의 무한함을 상징한다. 참배단 안에 각각크기가 다른 정삼각형의 삼단기단은 계,정. 해,삼학과
수행과정을 의미하고,
삼각형 위의 상하로 등을 맞대고있는 반구는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하며
맨 위 중앙의 구는 완전한 깨달음의 참된 진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사리탑을 거쳐 해인사 안내문을 지나고 “연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거의 90도로 젖혀야 그 끝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주목이 앞에선 11계단의 일주문을 들어서니,
길 양편 좌우로 千년 이상 된 고사목을 비롯한 30여 그루의 수백년 이상된 고목들이 하늘을 가리며
늘어서 있다.
그 아래를 지나 9개의 돌계단을 올라 봉황문을 거쳐 28계단을 올라 해탈문 을 통과하면 구광루(九光樓)
해인사 미술관과 서점이 있다.
넓은 마당 좌측에 해인사 종각이 있고 우측에 보경당(普敬堂) /회관 이 있다.
구광루 좌우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저 앞에 대적광전(大蔋光殿)이 보인다. 다당 중앙에 통일신라 때에 세운 삼층석탑이 있고 마당 좌우에 오래된 커다란 건물이 한 채씩 있는데 수리중이어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마당 좀 높은 23개의 계단을 힘들여 오르면 1200년 전에 순응.이정 수 스님이 세우셨다는 경남 유형문화재 245호인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 바로 뒤에 길게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정면 15칸 크기의 두 채의 팔만대장경관전이 있는데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곳이다.
건물은 판전이 필요로 하는 기능만을 강조하여 의장을 하지 않았으며,
전후면의 창문의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고,
바닥의 다짐 등으로 통풍과 방습, 실내 적정온도의 유지, 판가의 진열 장치 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되어 있어 지금까지 대장경판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동쪽과 서쪽에는 작은 규모의 판전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때에 불력(佛力)으로 몽고군의 침력을 막기 위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대장경판을 조각한 것으로 16년에 걸쳐 조각한 것인데 8만4천 법문을 81,258장에 조각하여 팔만대장경이라 하고,
이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곳이 팔만대장경판전(국보 제25호) 이다.
이곳에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로는 대장경판81,258장(국보 제32호). 고려각판 2,725판(국보 제206호),
고려각판 110장(보물 제734호) 이 있다.
수십명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팔만대장경 판전 앞에서 안내원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사못 진지하다.
그 판전 우측 담 너머에 해인총림의 방장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6,7대 종정 인 성철 스님께서 입적하신 퇴설당이 있다.
문이 굳게 잠겨 있고 타인들의 방문은 거절한다.
불교 신도도 아니고,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었고
또 이세상에 생존해 계신분도 아닌데 그리 낮설게 느껴 지지도 않고
자꾸 그분에게 다가가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수 백년에 한번 이세상에 나올까 말까한 거목이셨다고 한다.
불문에 들어선 이래로 단 한 벌의 옷으로 평생을 보내셨다고 하니
그분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내일 가야산을 산행할 때 꼭 성철스님이 마지막으로 기거 하셨던
백련암의 “좌선실”을 꼭 들려보아야 겠다.
오후 5시
많은 산행을 하면서 그곳에 있는 크고 작은 많은 사찰을 지나오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선뜻 발길이 해인사에서 돌아서질 않는다.
넓고 넓은 수만평 규모의 해인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가면서 돌아보았으면 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내일의 가야산 산행으로 달래볼까 하며
벌써 산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는 해인사 일주문을
성철스님 께서 하셨다는 말을 되 뇌이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귀찮을 정도로 일일이 묻는 말에 더운 날씨에 구슬땀을 흐려가며
좋은 말씀을 하여 주신 많은 해인사 스님들께 감사을 드린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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